[이엘 성범죄 피해자 케어센터] 불법촬영 성범죄 피해자, 신고 전 증거 확보가 먼저인 이유
불법촬영 피해는 촬영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충격 속에서 가해자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삭제를 요구하는 사이, 대화 기록과 저장 매체가 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신고 여부를 결정하기 전이라도 촬영 정황, 대화 내용, 유포 가능성을 확인할 자료를 먼저 보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법촬영은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나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는 경우뿐 아니라, 연인·지인 등 신뢰 관계 안에서 동의 없이 촬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포함된다. 유형은 다르지만 피해자가 범행을 알게 된 직후 겪는 불안과 혼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때 가해자에게 먼저 항의하거나 삭제를 요구하기보다, 촬영 정황과 대화 내용, 유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먼저 보존하는 것이 피해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연인·지인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이미 삭제했다”, “동의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책임을 축소하는 경우가 있다. 피해자가 즉시 항의성 메시지를 보내면 이후 진술이 감정싸움처럼 보이거나, 가해자가 휴대전화와 저장기기를 정리할 시간을 벌 수도 있다. 따라서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직후에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객관 자료를 확보한 뒤 대응 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를 인지했다면 카카오톡·문자·SNS 대화, 촬영을 암시하는 발언, 영상 파일 존재를 확인한 화면, 유포 협박성 메시지, 계정 주소와 게시물 URL 등을 따로 저장해야 한다. 캡처만으로 부족할 수 있으므로 날짜와 시간이 보이게 기록하고, 원본 파일이나 대화방을 임의로 삭제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해자가 영상을 삭제했다고 말하더라도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 클라우드, 외장 저장장치, 메신저 전송 내역에는 흔적이 남을 수 있고,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이나 디지털 포렌식이 필요해질 수 있다. 초기 상담 단계에서는 ‘무엇을 신고할지’뿐 아니라 ‘어떤 자료를 먼저 보존해야 하는지’를 함께 점검해야 한다.
반대로 가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해 삭제를 요구하거나, 게시물을 확인하면서 증거 저장 없이 시간이 지나면 유포 경로와 시간대를 특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신고 전 단계의 핵심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보존 가능한 자료를 차분히 정리하는 데 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동의 없는 촬영뿐 아니라 촬영물의 반포·제공·유포, 영리 목적 유포, 불법촬영물의 소지·시청 행위까지 별도로 규율하고 있다. 다만 형사처벌이 곧 피해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온라인에 유포된 촬영물은 완전한 회수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유포 경로 차단, 플랫폼 신고, 삭제 지원, 모니터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수사기관에 제출할 자료도 같은 기준으로 정리해야 한다. 단순히 “영상이 있다”는 말보다 촬영을 알게 된 경위, 가해자의 말, 저장·전송 가능성이 의심되는 정황, 피해자가 겪는 불안과 2차 피해 위험을 순서대로 설명해야 압수수색과 포렌식 필요성을 설득하기 쉽다.
이엘 성범죄 피해자 케어센터 차재승 대표변호사는 “불법촬영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먼저 연락하는 순간 증거가 삭제되거나 말이 뒤섞일 수 있다”며 “신고 전 단계에서 촬영 정황, 대화 기록, 유포 가능성, 삭제 요청 방식까지 정리한 뒤 움직여야 피해 회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불법촬영 사건의 핵심은 ‘언제 신고하느냐’만이 아니라 ‘어떤 자료를 들고 신고하느냐’라고 말한다. 초기 자료가 정리돼 있을수록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필요성, 포렌식 범위, 삭제 지원 요청도 구체화될 수 있다.